[스크랩] 골인 이라는 약이 있네요.

2007. 2. 2. 10:30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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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사는 명의열전' - 여성백과 1993년 3월호특별부록                                                      KBS문화사업단

 

부자(附子)처방 받으면 몸 속의 농약도 나온다.

 

   농약은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몸 속에 축적, 엄청난 신체적 폐해를 낳는다. 만약  체내의 농약을 밖으로 배출할 수 있는 약이나 방법이  있다면 이는 인류에게 큰 구원이 될 것은 당연하다.  경남 산청군에 사는 민속의학자 권재우옹은 부자(附子)를 이용,  농약중독과 알코올중독 해독에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겨울 산은 정갈한 느낌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다.모든 것을 훌훌 털고 매서운 바람에 아랑곳없이 서 있는 겨울 나무는 선승(禪僧)을 떠올리게 만든다.이 번호의 명의 열전 취재를 위해 일행은 남도 천리 진주 길을 따라 나섰다. 천리 길 내내 우리는 정갈한 겨울 산의 반김을 받으며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에 사는 민속의학자 권재우(62세)옹을 찾아 나섰다. 지리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은 한의학에 있어서 유서 깊은 지명이기도 하다. 의성 허준 선생이 바로 산청군 신안면 용현이라는 마을에서 의업의 도를 닦았으며 허준 선생을 길러낸 조선 최고의 명의 유의태선생도 산청군 사람이었다. 또한 고려시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이  이 땅에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한 곳도 바로 산청군이었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단성면 성내리의 권옹댁을 들어섰을 때 진한 한약재가 문패 대신 한의의 집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부친도 경상도에서 알아주던 명의

 

   짝달막한 키에 다부진 인상을 풍기는 권재우씨는 마당 가득 펴놓은 한약재를 손질하며 호쾌한 웃음으로 방문객을 맞았다. 뜬소문을 듣고 찾아온 우리는 몇 마디의 대화를 거치며 숨어 사는 명의가 아니라 이미 이름을 세상에 널리 내고 있는 명의임을 깨닫고 저으기 실망했으나 그가 40여년간 이 땅의 병마를 몰아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그가 쌓아온 우리 민족의 위대한 민속의학에 금자탑은 이내 서운함을 가셔 주었다.

   권옹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무릅쓰며 개발한 마약 중독 치료제인  골인(骨仁)은 이미 서울대학교와 경북대학교에서 임상 실험으로 그 효능이 입증되었으며, 세계 보건 기구(WHO)에 보고 될 예정이다.  골인의 놀라운 효능은 쉽게 믿기지 않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라고 한다. 한약재인 부자와 화학적 처리를 거친 운모, 규산염 등을 주성분으로 한 골인은 기존 마약 중독 치료제로 15∼90일이 걸리던 치료기간을 5일 정도로 크게 단축시킬 뿐 아니라 중독자가 겪는 금단기 (禁斷期)  고통을 72시간에서 24시간으로 극소화시킨 다는 약물 효능이 공인되었다고 한다.

  이미 60년대부터 효능을 인정받은 골인이 이제 와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은 세상에서 내로라 하는 연구 기관에서도 만들지 못하는 마약 해독제를 의학자도 아닌 무명의 민속의학자가 개발해냈다는 사실이 황당무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 “골인은 마약뿐만 아니라 농약, 약물, 또 연탄가스 중독, 알콜 중독도 1∼2일 이내에 삭 고쳐진다는기라”  권옹은 골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감격에 짓눌려지는 듯 수술 흐르던 말줄이 간간히 끊겼다. 그는 원래 현재 살고 있는 성내리에서 시오리즘 떨어진 교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교동은 안동 다음의 양반골이라 과거급제자는 안동보다 더 나았어.  집집마다 다 선비집여.”  그는 엄격한 유가 풍습에서 자라 부부가 한 방에 자는 것은‘상것’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겼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 역시 인근에서 알아주는 유학자로 일제 시대에 보성전문학교를 나온 인텔리였으나 조선 왕조가 망한 마당에 벼슬은 할 수 없다며 향리에 묻혀 은유자적하는 여생을 보냈다. “선친 친구분 중 이효상 전 국회의장이 계셨어요.  후에 골인 임상 실험을 하는데 참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여하튼 그의 선친은 벼슬 대신 한의학에 조예가 깊어 한때 대구에서 한약방을 경영하여 좌골 신경통 환자들이 몰려와 꽤 돈을 모았다. “제가 외동아들입니다.  아버님이 보성전문대를 나온 개화된 분이었는데 저는 국민학교를 끝으로 학교 문전은 못 가봤어요.”기가 세 공부하면 역적된다고 진학 안 시켜 단성 국민하교를 다닌 그는 꽤 출중한 수재로 항상 1등을 도맡아 했지만 그의 괴벽은 선친으로 하여금 더 이상 공부를 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내가 좀 엉뚱했어요.  해방 된 후 나라가 온통 어지럽고 먹고 살기가 힘든 때였어요.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대통령이 되면 백성을 위해 큰일을 할 것 같아요.”  그는 대통령이 되기로 목표를 세운 후 뒷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린다. “그 때는 산짐승이 무척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지리산 자락으로 날이 어두우면 문밖 출입을 삼갔지요.”제일 무서운 짐승은 늑대였다고 한다.  “그런데 늑대라는 짐승은 입이 길어 서 있는 사람은 못 물어요.  여러 마리가 빙 둘러서 협공을 해 사람을 넘어드린 후 물지요. ”  그는 야밤의 산상 기도를 위해 참나무로 창을 만들어 찌르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늑대는 꼭 앞발을 들고 공격해 옵니다.  등 쪽은 아무리 때려도 끄떡안 해요.  배쪽이 가장 약하니까 창으로 찌르는 연습을 한 거지.”  이때 그의 나이는 14세.  그는 100일 동안 연습을 한 후 새벽3시 800고지 능선을 횃불을 밝힌 채 오르기 시작한다.  “산 쪽으로 5십 미터쯤 올라가니까 늑대들이 소리를 내며 일곱 마리가  달려들어요.  아름드리 소나무에 등을 대고 창을 곧추 잡았지.  한 놈이 앞발을 들고 뛰어 올랐다.  그는 100여 일의 연습으로 숙달된 재빠른 솜씨로 힘껏 창을 내질렀다. “하하, 보기 좋게 늑대들이 뒤로 물러서서 못 덤비더라고.”   그 뒤로 늑대들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다만 에워싼 채 좇아 다니기만 하였다. “늑대 덕도 좀 봤어요.  왜냐하면 늑대보다 무서운 놈이 산돼지야. 늑대는 우우 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내고 사람을 공격하는데 산돼지는 갑자기 덤벼들거든.   늑대들이 에워싸고 다니니까 산돼지가 도망가 버리지. 그뒤로 내가 좀 늦게 나오면 늑대들이 앞산에 와서 막 울어.” 이렇게 담 큰 소년은 70여일 동안 산상기도를 다닌다. “그런데 결론이 대통령이 안돼. 하도 억울해 하루는 산꼭대기에서 새벽에 안 내려오고 오후 1시까지 있었어”  외동아들이 없어진 집에는 일대난리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 동원돼 꽹꽈리를 치며 재우 소년을 찾아 나섰다. “나중에 아버님한테 자초지종을 말씀 그렸더니 ‘너는 기가 세 공부하면 대역적이 된다’며 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친의 한약방에서 허드레 일을 시켰지요.” 그 당시 웬만한 부자집은 약재실을 따로 두고 있었으며 한의서도 꽤 갖고 있었다.  그런데 권옹의 선친은 부자(附子)처방에 비법을 터득하여 환자들로 문전 성시를 이뤘다.

 

3대 극약의 하나인 부자(附子) 잘 다스려

 

  부자(附子)는 초우, 천오와 함께 한의학에서는 3대 극약 중 하나로 치사 량은 4mg이다. 과용하면 생명은 물론 시력도 잃는 위험한 약재로 웬만한 의사들도 사용을 꺼리는 약으로 알려졌다. “인삼과 녹용은 선약이라 하고 부자는 난치병 약으로 약의 군왕(君王)이라 하지요.  보통 부자를 잘 다스려야 명의 중의 명의로 꼽지요.”  권옹의 선친은 부자를 이용한 디스크(좌골 신경통)와 관절염(류마디스관절염, 결핵성관절염, 노인성관절염) 치료에 명성을 얻어 인근은 물론 경향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렸다.

  대구의 광명당에서 부친의 의업을 배우던 그가 ‘50년 초에 축농증에 걸려 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으로 관절 신경통에 거리고 통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아편을 가까이 한다.  “6.25 전쟁 후라 마약이 흔했습니다.  아편을 먹어야 통증을 못 느끼니까 다급한 마음에 자꾸 아편을 찾다보니 중독이 됐어요.”  이약 저약을 쓰다 결국 부친이 부자에 다른 한약재를 가미해 만든 약을 먹고 10여 일만에 아편 중독에서 헤어난 그는 부자에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게 된다. “견습생으로 있어 부자가 어떤 한약이지는 대충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부자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건데 워낙 위험한 약이라 실험해 보기가 어려웠지요” 그는 부지런히 개를 키워 자신이 만든 한약을 사람 대신 투약해 보았다. “개 참 많이 죽였어요.  무독화가 안돼 그냥 주고 또 이렇게 해보면 되겠다 싶어 개한테 먹여보면 실패하고 한 3년여 동안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어요. ” 그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부자를 열처리하여 무독화 하는데 성공하여 유황과 운모 등을 조합, 인체에 해롭지 않은 약재를 개발하게 된다.

  “일단 내가 먹어봐요.  그 다음 안심이 돼야 환자에게 투여하죠.”  한의원에 찾아오는 아편 중독자 6백여 명을 대상으로 투약한 결과 약의효능에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를 대중화하여 수많은 마약 중독자를 구제하겠다는 그의 포부는 계속되는 시련을 맞게 된다.  공인 의료 기관의 임상 실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산골 의학자’의 결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미친 사람으로 몰렸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지난 64년 당시 경북 도내 마약 중독자 수용 기관인 대구 시립병원의 정신과 의사였던 반수경박사에서 1주일 넘게 매달린 끝에 21명이 마약 중독자에게 꿈에도 그리던 임상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이때 권씨의 집념에 감동, 임상실험을 허락한 반박사는 ‘혹시나’하는 걱정 때문에 사흘 밤을 뜬눈으로 새며 환자들을 관찰했다고 한다.

  첫 임상 실험은 만족할 만큼 대성공이었고 그 때는 이미 흭에 눈도 많이 떠 직접 환자도 받았었죠.  한번은 전 서울 시장이셨던 김현욱시장의 자당이 다리가 아프시다고 왔는데 고쳐주었더니 그 때 돈 50만원을 주더군요.  기분 좋다고 술 마셔 날렸지만. 여하튼 그는 부친의 친구이던 이효상 전 국회 의장의 소개로 서울대 의대 남모 과장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남모 과장은 권씨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시골 사람의 허황된 치기로 치부해 버렸다. “상대를 안 해줘 그날은 그냥 왔습니다.  그리고 또 갔어요.  점심도 사고 매달리니까 할 수 없는지 보사부 법령상 마약 중독자 수용소 외에는 마약 중독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답니다.”

  그는 곧장 보사부로 달려가 담당자를 만나 하소연한다. 어찌어찌해서 국회에서 서울대학교에서 골인 임상 실험을 하독록 임시법(보약무1442150055)을 제정, 공청회와 시경의 협조를 얻어 1백 8명의 마약 중독자를 검거 임상 치료를 했다. 당시 직접 실험을 맡은 김광일 (현 한양대 의대 신경정신과)교수는 혼미, 환각 등의 마약 중독 현상을 치료하는데 당시 가장 훌륭했던 치료제라는 ‘클로프로마진, 보다 2배 이상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약리 작용 등에 대해 더 밝혀야 할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더 밝혀야 할 부분’이란 간에서의 해독 작용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1만5천 분의 1 확대 전자 현미경이 있어야 가능했으나 66년 당시 국내엔 이 현미경이 도입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임상 실험을 했던 서울 의대 쪽에서도 보고서는 ‘골인의 효과는 정온 작용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기술돼 해독 작용이란 표현을 쓰지 못했다.

  “그때 해독 작용이라는 의학적 입증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으로 가야 하는데 여력이 없었어요.  서울대에서 임상 실험하는데도 4천만원,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몇 십억이 들어 거덜났었습니다.”  이 바람에 그는 대구에서 열 손가락에 들던 대저택이었던 서상일 제헌의원의 집을 도로 내다 팔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임상 실험이 대성공이어서 내가 제약회사를 차려 전 세계의 마약을 퇴치하겠다는 포부가 컸지요.” 그러나 그는 협심증이 도져 도중 하차하고 만다.  업친데  친격으로 병행 연구하던 비상이 함유된 암 치료제를 임상 실험을 위해 직접 복용했다가 반신 불수로 식물 인간이 되어 버렸다. 암 얘기를 꺼내면서 그는 죽을 고비 두 마당을 꺼냈다. “그게 70년대 초 일입니다.  내가 60년대 말 암환자를 여럿 고쳐 사방 암환자를 여럿 고쳐 사방 암 환자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 암 덩어리가 망치로 때려도 안 부서질 만큼 단단해 무슨 약을 써도 용해가 안돼요.  그런데 내가 병원에서 떼어낸 암 덩어리를 갖다 해보니까 딱 3가지에 녹아요.  하나는 비상(극약)이고, 또 하나는 부자, 그리고 두부 할 때 쓰는 간수에 암 조직이 파괴돼요.

  수많은 초근 목피가 약재로 쓰이는데 모든 약재는 맵다는가 짜다든가 하는 맛을 아는데 비상약만큼 그 맛을 몰라요.” 그는 비상약의 치사량 72배까지 무독화에 성공하여 암 치료를 했었다.“ 이게 워낙 위험한 약이니까 조제해서 한 알은 개한테 먹여보고 괜찮으면 내가 먹어 보고 환자한테 주지.  하루는 너무 바빠 새로 조제한 약을 개한테 안주고 내가 먹으니까 지리산 같은게 머리를 탁쳐 그냥 쓰러졌지.”무독화에 실패하여 그는 숨을 쉬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그 와중에 마누라가 골인을 여덟 주먹 입을 열고 넣었어. 그러니까 숨이 돌고 살 것 같아. 그러다 5분쯤 지나니까 또 통증이 와 쓰러져.  그래 또 먹고 하니까 통증은 안 오는데 반신불수가 되고 총기도 떨어졌어.”  발칵 뒤집어진 집안에서는 이 후로 권옹이 무엇을 한다 하면 식구 모든 쌍수를 들고 반대하였다.  이곳 저곳 방을 놓아 ‘미친 사람 ’이니까 돈 꾸어 달라면 절대 빌려주지 말라는 당부까지 해놓았다. “그 때 돈이 있어도 뭐 해볼 수가 없었어.  내 몸이 반신불수가 됐는데 뭐”

  한 5년 치료 후에 완치는 외었으나 그의 괴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또 한 번의 반신불수 신세가 된다.  “서울대에서 복어 알 실험을 하고 있었어.   복어 알이 얼마나 독해. 가끔 복 잘못 먹고 죽었다는 보도도 있잖아. 서울 용산 시장서 복어 알을 사서 비니루에 싸가지고 윗 주머니에 넣고 서울대를 갔어.  정문 쪽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는데 복어 알을 싼 비니루가 터져 복어 독이 담배에 스민거야.  이걸 모르고 담배를 피우니까 내가 중독 돼서 그냥 길거리에 스러졌어. 말을 해야겠는데 혀가 안 돌아가. 사람들이 택시 태워 줘 병원으로 가는데 내가 간신히 종로 범천 한의원으로만 가라고, 거기가 내가 하던 한의원이니까 골인이 있었거든.”

 

 미친 사람이라고 친척들도 따돌림

 

  그는 골인을 먹고 목숨을 건졌으나 4년 동안 수족을 못쓰고 만다. “복어 알은 비상약 대신 식물성 비상약으로 써보려던 거야.  이렇게 두 번 당하고 암 환자는 안 보는데 내년부터 다시 해볼 생각이야.”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자나깨나 골인 약만을 생각했다고 한다. 89년도엔 미국 LA 마약센터에서 코카인 중독자 5명과 헤로인 중독자 4명에게 ‘골인’을 투여한 결과, 환자 모두 3∼4일의 호전기를 거쳐 5일만에 중독증이 완치돼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으며 이스라엘 마약센터에서도 놀라운 효능이 입증되었다.  또한 91년 1월, 국내의 학계에도 고성능 전자 현미경이 도입돼 경북대 의대팀이 ‘골인’의 해독작용을 실험한 결과 마약 중독 치료는 물론 알코올 중독, 농약과 연탄가스 중독 치료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져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식 보고될 계획이다. 녹두알 크기만한 골인, 권옹이 40여년간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파 결실을 보게 된 이 한약은 과연 얼마만큼의 효능이 있는지 그 간의 연구 결과를 개략 해본다.

   1974년 20대 남자 40명과 40대 남자 20명에게 음주 전 또는 음주 후 골인을 투여한 결과 음주 후유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숙변을 보았다. 연탄가스 중독시 녹두알 만한 부자환을 300개 정도 물에 타 투입한 결과 15분 후에 회생하고 후유증이 없었다.  식중독으로 오는 위경련, 두드러기 등 99% 치료, 농약 중독, 만성 변비, 월경 복통 등의 부인병에도 특효가 있는 것으로 조사, 보고되었다. “이건 완전 무독화해서 부작용이 없어요.  복용시 경미한 복통 및 설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 일내 자연 해소됩니다.  이미 1966년도 서울약대 생약 교실에서 임상 실험한 결과입니다.”  골인의 효과중 무엇보다 알코올 중독해소 작용을 빼어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술을 마시기 전 20∼30알 정도를 먹고 술을 마시면 술이 잘 취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고 난 후에 먹어도 훨씬 빨리 술이 깬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간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골인을 3∼4개월 복용할 때 90% 가까이 지방간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는 명의 중 명의가 될 수 있다는 부자(附子) 다스리는 법을 완전 터득한 셈이다.  그래서 경상도 일대에선 이미 유명 인사가 되었다. 골인뿐만 아니라 그가 꽤 잘 고치는 분야는 디스크와 관절염 환자, 이 두 병에 관한 98% 완치시킬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디스크와 관절염 치료도 제약 중의 군왕(君王)이라는 부자에 비법이 있어요.  부자를 혼합한 약재를 투여하면 신경 계통이 되살아나고 연골 조직도 복원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부자를 무독화해서 다량으로 인체에 투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죠.”  권옹은 결핵성 관절염의 경우 부자 치사량의 칠 배까지 투여하면 연골이 재생되고 마디마디가 붓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치사량의 10배는 투약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만성화된 관절염 환자는 뼈가 기형으로 틀어지고 전신 연골이 망가져 합병증이 들어 자신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디스크나 관절염 환자들 중에 약 20% 정도는 일종의 명현(瞑眩)현상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치료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현현상이 오면 전화해서 욕을 합니다.  병이 낫기는커녕 더 아프니 사기꾼 아니냐고 그럽니다  다 나으면 나중 미안해 합니다.  명현 현상은 대개 한달 이내 오고 80% 정도는 명현현상이 없이 서서히 좋아져요.”  여하튼 난치병 중의 난치병인 디스크나 관절염 환자가 무명의 산골 의학자에 의해 98% 완치된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때 암도 여러 번 치료 시도

 

  “내가 이 시골에 눌러 살지만 아마 우리 나라 최초의 노벨상을 타게 될 거야.  그것도 전 유엔 회원국의 100% 추천에 의해서 말이야.   하하.”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골치 거리인 마약 중독이 단 5일만에 완치되는 약제가 개발되고 무료로 전세계에 보급된다면 노벨상도 별 수없이그를 찾게 될 거라는 것이다. “ 이 이마 좀 봐  내가 이렇게 넓게 이마도 만들었으니까 허언이 아닐꺼야.” 그는 넓은 이마를 만들어(?) 가졌다.  국민학교 때 큰일을 하고 싶어 관상을 보러 점집에 갔더니 이마가 좁아 큰일 해먹기는 글렀다는 얘길를 해주더라난다.  곧장 집으로 달려온 재우 소년은 이마를 번듯하게 넓힐 요량으로 생머리를 뽑아 훤한 이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피가 맺혔어.  벌건했지.  그래도 큰일하겠다는 욕심으로 이마가 넓어지니까 좋더라구, 밖에 나가 자랑했지.  내 이마 멋지지 않느냐구.”  이렇게 해서 그는 팔자에도 없는 넓은 이마를 이고 다니다.  그리고 노벨상을 향한 발걸음도 점차 구체화 되고 있다.

 

마약치료제는 세계에 보급 할 터

 

  지난 12월 11일(1991년도)에는 한 촌로가 서울의 프레스센터에서 국내 체류 1백 5개국의 외국 공관 직원과 내외신 기자들을 초청, 학술 발표회도 가졌으며 유엔 가입국 1백60여 개 국가에 무료로 골인을 보낼 계획이다.  또한 이스라엘 마약센터와 파키스탄에는 지난 해 7월부터 공급하고 있다. “문제는 자본이 없는 내가 어떻게 대량 생산하느냐 하는 거요.  특허도 1년 전에 출원해 놓아 곧 나올 테고, 내가 영어를 알아야지.  그래서 서울대 졸업한 셋째 놈을 취직 못하게 붙잡아 뒀어.  그 애가 있어야 일이 될 거 같애.” 그는 알코올 중독과 농약 중독으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약을 공급하고 싶다고 소망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이 도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제 쓰임을 타고 나는 법이라며 자신은 아마 약으로 민중을 구하라는 쓰임을 타고 난 것 같다는 것이다.  다만 소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끝낸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이 공부를 좀더 했더라면 골인이 빛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만 했던 40여 년은 훨씬 단축됐을 거라는 얘기다.  약효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받기 위해 ‘꼬부랑’ 글씨만 알아도 어떤 수를 써서 미국까지 갔을 거라는 그는 허준 선생 이상의 훌륭한 민속의학자가 산청에서 솟아나고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권옹과 헤어져 산청을 나오며 몇 번이나 지리산 자락을 눈으로 훑어 보았다.  여기 저기서 진한 한약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만 같아 코끝을 훔치며 선승같은 겨울 나무를 보았다.

출처 : 원광디지털대학 한방건강학과
글쓴이 : 오민교(06)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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